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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망초대석] `탈원전 화가` 정철교, 그가 `개집`에 들어간 이유는?

“그림은 '기억이 저장되는 장소'‥내 삶 끝날 때까지 붓 놓지 않을 것“

기사입력 2018-10-22 14:48:15 | 최종수정 2018-10-23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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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교 화가의 작품 "기억이 저장되는 장소" 中
【봉황망코리아】 유경표 기자=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현재 한국 사회는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다. 전력 생산의 약 3분의 1을 원자력에 기대고 있는데다, 자원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무모하다는 비판도 일각에서 존재한다.

하지만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불거진 원전의 안전성 논란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행보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다. 원전은 깨끗하고 저렴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수단이지만, 반대로 손쓸수 없는 재난이 닥쳤을 때는 되돌릴 수 없는 재앙을 가져오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국회입법조사처가 전체 발전용량을 국토면적으로 나눈 값인 원전 밀집도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 0.240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심지어 일본의 0.111보다 두 배 가량 높다. 만일 원전사고가 한국에 발생한다면 궤멸적 수준의 피해를 면하기 어렵다.

‘원전’에 집요하게 매달려 온 화가 정철교의 물음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울산 서생면의 고즈넉한 바닷가 마을을 그린 작품을 통해서다. 강렬한 원색과 굵은 선으로 구성된 그의 작품에는 무채색의 신고리 원전 3·4호기의 모습이 마치 ‘불청객’처럼 자리하고 있다. 여느 시골 마을과 다름없는 풍경 속 이질적인 존재로 묘사되는 원전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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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교 화가의 "자화상" ⓒ봉황망코리아
◆ '자화상의 화가' 정철교, 치열한 내면 탐구로 꽃피운 예술 세계

지난 18일 정철교 화가를 만나기 위해 기자는 울산에 있는 그의 아틀리에인 ‘웅상아트센터’를 찾았다. 반갑게 맞아주는 정 화가의 얼굴을 보니 수더분한 인상과 함께, 예술가의 트레이드마크인 ‘턱수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인사를 건네는 차분한 말투에선 그의 부드러운 성품을 짐작케 했다.

1953년 경북 경주시 감포읍에서 태어난 정 화가는 부산 동래고등학교와 부산대 사범대학(미술교육과), 부산대 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사실 그가 미술에 뜻을 품은 것은 중학교 때부터였는데 부모님의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술을 향한 그의 열망에 부모님도 결국 손을 들었다. 청년시절 그는 부산대에 합격해 놓고서도 등록금이 없어 발표장만 보고 돌아와야 했지만 그해 전국미술실기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으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서울 미술청년작가회에 가입해 활동했고, 부산에서도 뜻을 같이 하는 동료 화가들과 그룹을 결성해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가지기도 했다.

이처럼 활발한 작품활동을 이어가던 그였지만, 어느 날 인간관계에 대한 강한 회의감에 사로잡히고 만다. 사람과의 관계에 매달릴수록 자신과의 관계는 멀어져가는 것처럼 느끼게 된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라는 화두가 그의 머릿속을 꽉 채웠다.

이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정 화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으로 들어간다. 자연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하는데 몰입했다. 마치 노트 글씨가 희미해지듯이 인위적인 자신을 지워나가는 한편, 본질을 치열하게 탐닉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자화상’ 시리즈다. 이 작품은 각 시기마다 달라지는 화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20대에는 풋풋한 감성이 느껴지고, 30대에는 특유의 거친 맛이 있다. 그러다 40~50대에 이르면 자연의 품에 안긴 그의 모습이 주를 이룬다. 작품의 기법도 변화무쌍하다. 초기 자화상들은 사진을 보는 듯 한 극사실주의 화풍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의 색과 선이 단순해지고 추상적으로 변화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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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교 화가의 "자화상" ⓒ봉황망코리아
"자화상을 왜 그리냐고 묻는다면 습관이자 일기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의 내·외부 즉, 내 삶을 그리는 것입니다. 밖을 인식하는 것도 나고, 내 속의 감정을 찾으려는 것도 나고, 내가 있음으로 해서 그림도 존재한다는 것이죠.”

정 화가는 자화상에 말 그대로 ‘미친 듯’ 몰입했다. 담배와 술조차 끊은 그는 한 해에만 무려 300점 가량의 자화상을 그리기도 했다. 단 하루라도 붓을 놓을 수 없다는 고집은 급기야는 강박증으로까지 번져 그를 괴롭혔다. 나중에는 나무나 풀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환청’까지 들렸다고 한다.

작품에서 정 화가는 '개집'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돌무더기 위에 '얼굴'만 놓여있거나, 혹은 '먼지'로 표현되기도 한다. 캔버스 뒤편에는 자신이 느낀 짤막한 감상이 적혀 있다. 가령 ‘나뭇잎이 말라가는 냄새! 나도!’라는 문구에는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한 고통으로 인해 정신적·신체적으로 쇠약해져 가는 자신을 시적인 감수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자화상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예술세계는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으로 점차 확대된다. 거친 바람에도 아름답게 들판을 수놓은 이름 모를 들꽃이나 자신이 직접 가꾼 ‘다알리아’ 등에 주목한 '열꽃'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붉은색과 노란색, 초록색 등의 원색을 물감을 섞지 않고 굵직한 선과 함께 표현한 이 작품은 자연의 생명력에 대한 그의 찬사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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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정철교 화가 ⓒ봉황망코리아
◆ 원전이 있는 바닷가 마을의 '스산한 풍경'…"화가의 역할은 목소리를 내는 것"

정철교 화가는 2010년께 자신이 살던 경남 양산에서 지금의 울산 울주군 서생면으로 터전을 옮겼다. 양산에서 가꾼 그의 집은 아름답기로 주변에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자연과 건물이 어우러진 그곳에 살면서 고질적인 편두통과 잔병치레도 사라졌다. 작품을 그리는데 필요한 영감도 충만했다.

반면, 집에 얽매이는 시간도 그만큼 늘어갔다. 이에 대해 정 작가는 "작품보다 오히려 집을 가꾸는데 드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고 회고한다. 그래서 그가 새로 옮긴 곳이 서생면 바닷가 마을이다.

"예전에는 집 꾸미고 남들 만나는데 쓴 시간을 작업에만 투자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없기 때문이지요. 제 삶은 유한합니다. 젊었을 때부터 그림을 시작했지만 그동안 그린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나머지 그려야할 작품을 모두 마무리한 후에 눈을 감고 싶습니다. 일종의 총량제와 같은 거지요.”

그가 살고 있는 서생면에는 신고리 3·4호기가 위치해 있다. 마을 어디를 봐도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함께 원전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때만 해도 원전에 대한 경각심이 전혀 없었다는 그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작품 주제의 일대 전환을 맞는다.

정 화가의 ‘고장난 풍경’ 시리즈에서 그려진 ‘골매마을’과 ‘신리마을’은 실제로 원전이 들어서면서 없어졌거나 곧 없어질 장소다. 작품에서 이 마을들의 하늘은 파란색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대부분 불길한 느낌을 주는 붉은색이나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또한 캔버스에 무심한 듯 죽죽 그어져 있는 거친 선들은 ‘생채기’나 ‘혈관’ 등을 연상시킨다. 그 가운데 원전은 마치 생명이 없는 듯 창백한 모습으로 화면의 일부분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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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교 화가의 작업실 모습 ⓒ봉황망코리아
원전을 주제로 회화 작품을 발표한 것은 정철교 화가가 처음이다. 마을 주민이자 화가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은 ‘그림’밖에는 없었다는 그는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원전의 '그림자'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화폭에 담았다.

비록 원전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담고 있지만, 단순히 정 화가를 극렬한 원전 반대주의자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는 원전이 가진 존재가치를 완전히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 화가는 자신의 작품이 특정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제일 좋은 것은 원전이 없어지는 것이겠죠. 원전이 없으면 이 아름다운 풍경,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이곳이 더욱 살기 좋은 곳이 될테니까요. 그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원전의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을 합니다. 다만 원전의 운영주체가 숨기는 것 없이 투명하게 잘 운영했으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전을 그리는 것은 저에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화가의 관심사는 이제 ‘사람’을 향하고 있다. 생선을 다듬는 횟집 아주머니의 모습, 어민들의 모습, 부지런히 마을 곳곳을 누비는 우체부의 모습 등 마을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담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그림에 담긴 주민들의 모습이 풍경의 한 부분으로 그쳤다면, 앞으로는 삶의 모습들을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포부다.

이와 더불어 정 화가는 자신의 작품들을 매년 서생면에 위치한 우체국이나 식당, 은행 등에 걸어 주민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작품의 생명력은 작품이 태어난 곳에 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한편, 정철교 화가의 작품들은 다음달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는 ‘상하이 아트페어’에 전시될 예정이다. 지난 2009년 이후 두 번째 중국 나들이다.

평소 중국 미술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정 화가는 "중국의 많은 작가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예술가들이 교류를 통해 서로 발전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yukp@ife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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