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행문] 혈연의 강들上 제2부 압록강 2천리 - 제7장 력사의 현장(1)

글 : 류연산

기사입력 2018-07-05 09:08:38 | 최종수정 2018-07-05 09: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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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설의 고구려

6월 10일 아침 7시, 내가 장백을 떠나 무송에서 기차를 타고 통화를 경유 집안시에 도착한 때는 밤 10시였다.

길림성의 최남단에 위치한 집안시는 아온대 대륙성계절풍습윤기후에 속해 해빛이 충족하고 강우량이 많아 길림성의《소강남(小江南 - 즉 장강이남을 이름)》으로 불리고있다. 집안시는 백두산 로령(老岭)산맥의 남단에 위치했으며 사면이 산과 물에 에둘러있고 기후가 온화해 저명한 서법가 범증(范曾)이《소강남》이라고 돌에 새겨 토구령(土口岭)에 세운다음부터 불려진 이름이다. 시 서쪽켠에 흐르는 작은 강을 옛날엔 계아강(鸡儿江), 근대에 통강(通江)이라 불렀다. 당지 주민들은 집안벌을 통강전자(通江甸子) 혹은 통강평원이라 한다. 19세기말 일본학자 요코이 다다나오(橫井忠直)가《고구려비 출토기》를 쓰면서 통강을《洞江》이라 적어 지금도 그같이 부르는 사람이 있다. 집안시의 관할구역 총 면적은 3,312㎢, 인구는 21만이고 그중 조선족은 10,484명(1987년 통계)이다. 시 소재지 집안진의 총 면적은 3.7㎢, 인구는 24,2745명, 그중 조선족이 1,613명이다.

차우에서만 장장 12시간 시달린 피로를 허술한 려관에서 풀 사이도 없이 이튿날 아침 나는 압록강변으로 나갔다.

성곽인양 둘러선 험준한 산악의 비좁은 계곡에 촘촘히 앉은 조선 자강도 만포시가 울며 흐르는 푸른 물을 사이에 두고 지척으로 달려왔다. 물자와 려객을 가득 실은 국제렬차가 두나라를 련결한 철교를 구르며 달려가고있었다.

력사의 숨결이 깃든 강언덕에 서서 계곡을 달리는 물살 빠른 강줄기를 바라보노라니 사나운 물살에 휘말린 사나이다운 만고의 넋이 가슴벽을 쿵쿵 치는것만 같았다.《창창한 이끼를 룡포로 두르고 통구의 언덕에 외로이 서서 천백년 풍우의 긴 세월》(조룡남 작 시《실종된 민족》에서)을 침묵속에 지켜온 호태왕비, 고구려민족의 려명과 비운이 어린 옛 성터의 깨진 기와,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심장을 깎아서 쌓아올린 국내성(国内城)과 환도산성(丸都山城), 4백여년 가슴 벅찬 세월속에 찬란한 동방문화를 창조해온 인간들이 천년을 두고 잠든 무덤들…

1993년 6월, 북방부녀아동출판사(장춘)에서 출판한《고구려전설》(姜润东, 林至德 수집정리)은 수백년 력사를 생동한 화폭으로 펼쳐보이고있다. 전설은 이야기한다.

2천여년전 ,백산 흑수(白山黑水)사이 광활한 송료(松辽 송화강과 료하)평원에 북부여, 동부여, 졸본부여 등 몇개의 부여국이 있었다. 북부여국의 국왕은 해모수(解慕漱)였다. 그는 천상의 금우성(金牛星)이였는데 천조(天条)를 범해 지상으로 왔다.

어느날 해모수는 백학을 타고 가다가 구름을 뚫고 우뚝 솟은 천주(天柱)를 보았다. 웃부분은 흰 대리석과 같고 아래부분은 기화방초, 록음이 우거져 마치도 록색치마를 입고 상신에 흰 비단수건을 두른 선녀와 같았다. 해모수는 땅에 내렸다. 하늘을 받든 기둥과 같은 웅위로운 산밑으로 한갈래 강물이 흘러내리는데 물속의 돌이며 고기알까지 들여다보였다. 해모수는 이 강이 우발대수임을 알았다.

강속에서 선녀 셋이 까르르 웃으며 미역을 감는데 검은 머리, 발그레한 얼굴, 흰 살결… 련꽃같이 아름다왔다. 대신이 하백의 딸들이라고 아뢰였다. 해모수는 법술을 피워 강가에 아름다운 궁전을 만들었다.

사흘후 다시 나타난 하백의 딸들은 미역을 감고 궁전에 들어가 진수성찬에 술을 먹었다. 그런데 술에 취한 맏딸 류화(柳花)가 궁전에서 자다가 해모수한테 잡혀 부부가 되였다. 후에 해모수는 류화를 버리고 천국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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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산
동부여국 국왕 금와(金蛙)가 태백산(오늘의 백두산)에서 사냥을 하며 검은 여우를 쫓아 우발대수가에 이르러 류화를 만났다. 그는 아름다운 녀인의 신상을 듣고는 동부여로 데려다 서궁왕후(西宮王后)로 삼았다. 류화는 커다란 알을 낳았느데 그속에서 까난것이 주몽이였다. 주몽이란 활 잘 쏘고 용맹한 사나이를 이르는 말이다. 주몽은 공씨(孔氏)부인을 얻어 류리(类利)를 낳고 동부여국을 도망하여 졸본부여국으로 왔다. 졸본부여국 연타발(延陀勃)이 죽자 국왕이 된 주몽은 졸본부여국 도읍 흘승골성(纥升骨城 오늘의 료녕성 환인현 오녀산성)에 고구려를 세웠다.

무려 38편의 전설로 묶어진《고구려전설》에서 보는 고구려력사는 집안시에 있는 여러 고구려 무덤 벽화에서 아름다운 화폭으로 감상할수 있다. 말을 타고 활을 당겨 호랑이를 쏘는 용맹하고 씩씩한 사나이, 밭갈이 하며 씨를 뿌리는 부지런한 농부… 그중에서도 고구려인의 고상한 미감과 풍부한 정서를 지니고 하늘을 날아내리는 선녀의 모습은 정녕 전설속의 아름다운 류화를 방불케 한다.

리정남선생은 조선 황해도 안악군 대추리의 상지마을뒤에 있는 안악 제2호 무덤(5세기-세기초) 벽화에 그려진《비천(飞天)》을 아래와 같이 소개했다.

- 무덤 안칸과 네벽과 천정 그리고 안길벽에는 화려한 벽화가 그려져있다. 안칸 남쪽 벽 웃부분과 동쪽 벽에는 4명의《비천》을 그렸다. 그 가운데서도 동쪽 벽에 그린 비천이 제일 우수한 그림이다. 이 비천은 머리에 관을 쓰고 어깨에는 영락을 걸쳤는데 하늘 옷을 휘날리면서 가벼이 날고있다. 그의 머리우에로는 두줄기의 꽃술이 바람에 날리고있다. 약간 내려뜬듯한 눈과 벌린듯 만듯한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가 어리여 있으며 얇은 옷속으로 불그레한 살결이 스며 보이는 웃몸은 부드러우면서도 날씬하게 균형이 잡혔으며 맑고 깨끗했다. 얼굴도 아련하고 예쁘거니와 바람에 날리여 흐느적이는 긴 천의 가벼운 률동으로 하여 날아가는 모습은 더욱 우아하고 예쁘다. 보는 사람들을 매혹케 하는 비천의 자태는 환상적인 그림이라기보다 산 녀성의 아름다운 모습을 눈앞에 보는듯한 감을 준다. … 이 벽화속에는 하나의 아릿다운 고구려 녀인이 살아 숨쉬고있는것이다.

류화의 며느리 공씨는 아들 류리(类利)를 낳아 고구려의 강성을 도모했으므로 고구려력사에서 녀인들의 공로는 이루 헤아릴수 없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류리왕이 고구려의 도읍을 집안으로 옮긴것은 당시 민속과 긴밀한 련계를 갖고있다고 전설은 말한다.

고구려 사람들은 선조들이 죽으면 신선이 되여 후손을 보위한다고 믿어 해마다 단오와 추석이면 소, 돼지, 양을 잡아 굉장히 제사를 지냈다. 류리왕 18년, 제물로 갖고간 돼지가 도망을 했다. 돼지를 쫓아간 탁리(託利), 시비(斯卑)가 돼지의 뒤다리를 끊어 메고왔다. 왕은 제상에 올릴 돼지를 상하게 했다고 두사람을 생매장했다.

그후 왕은 늘 병환에 있었다. 무당의 말이 죽은 두사람의 작간이니 제를 지내라는것이였다. 그래서 다시 제를 지내는데 또 돼지가 뛰여났다. 당시 사물택(沙勿泽)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알고 돼지를 가져다 바쳤다. 그리고 고구려에 귀속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류리왕은 도읍을 오늘의 집안으로 옮기고 그 이름을 국내성이라고 불렀다.

동천왕(东川王) 집정시기 고구려는 중원일대의 삼국정립의 기회를 타서 위나라의 변경을 쳐서 승리를 거듭했다. 위나라 진수료동(镇守辽东)의 대장군 무구검(毋丘俭)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를 토벌했다. <계속>

정리: 최예지 중국 전문 기자 rz@ifeng.co.kr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판된 작품의 원본을 수정없이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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