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행문] 혈연의 강들上 제2부 압록강 2천리 - 제5장 울타리족속(1)

글 : 류연산

기사입력 2018-06-28 10:48:06 | 최종수정 2018-06-28 11: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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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7월 22일, 나는 두번째로 장백현 룡강향 이도강촌으로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룡강향 조선족 기숙제소학교 교장 리헌선생이 며느리를 맞아들이는 날이였다. 신랑은 리남일(李南日 24세), 신부는 리성숙(李圣淑 23세), 둘 다 소학교 교원이였다.

오전 11시가 되자 신랑, 신부가 승용차에 앉아 신접살림을 차릴 세집으로 왔다.
이 마을에서는 세집이라는 말이 통하지를 않는다. 빌어든다고 해야 합당한 비유일것이다.

《돈을 어떻게 받습니께. 우리도 아들 장가들면 들이려고 지은 집이라 지금은 사람이 들지 않습니더. 어차피 비울 집인데 사람이 들어서 보아주면 좋지비. 너 좋고 나 좋고인데 돈을 받는다는게 말이 되우?》

집주인의 말에서 나는 산간벽지의 후더운 인정앞에서 금전에 쪼든 왜소한 자신을 발견했다.
차가 멎어서자 양복차림의 신랑이 내려서 치마, 저고리에 꽃너울을 쓴 신부를 안아서 내렸다.《가마 타고 시집가고 말을 타고 장가든다》는 법은 다시 볼수 없는 옛말로 되였다.

같은 해 5월 2일, 연변조선족민속학회, 연길시혼인등록처, 연변방산호텔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민속혼례식에서도 말은 제거되고 연변박물관에서 제조한 쌍인가마에 신랑신부가 나란히 앉아 혼례식장으로 갔었다. 두루마기에 흰 수건을 머리에 질끈 두른 장정 넷이 가마를 메고 걷고 그 앞에서 북치고 상모를 돌리며 농악대의 상모춤이 길을 열어갔다.

민속학회의 박창묵회장이 시내거리에서 말을 탈수가 없어 신부만 타는 가마를 쌍가마로 만들어 신랑신부를 동석시켰다고 리유를 달았으나 어덴가 꺼림직한 생각이 없지 않았던 나로서는 그것마저도 볼수 없는 산간벽지 결혼식이 안타깝기만 했다.

신랑은 서양식, 신부는 한국식인데 꽃너울에도 레이스가 달려 있어서 동, 서양의 결합이라 하겠다. 게다가 색동옷을 입은 동남동녀가 꽃바구니를 들고 앞에 서서 꽃보라를 날리며 길을 인도해서 기독교식 결혼식을 련상시켰다.
신랑신부가 쌍 희(囍)자를 정 복판에 거꾸로 오려 붙인 울타리 대문께로 다가가자 갑자기 폭죽소리가 진동했다. 기다란 장대기 끝에 달아맨 폭죽이 련속 터지면서 매캐한 연기가 사위를 덮고《릉지처참》을 당한 폭죽 부스러기들이 지저분하게 땅에 널렸다. 폭죽소리에 액귀신이 놀라서 도망가고 행복이 쌍을 지어 들어오라는 중국식 혼례법이 우리 결혼식에 뻔뻔스럽게 비집고 들어온것이렸다. 신접살림집 유리를 넣은 문이며 옷장, 이불장에도 희자가 거꾸로 붙어서 빨갛게 웃고있었다.

신랑은 신부를 안고 연기속을 꿰뚫고 들어가는데 미안한 생각이지만 부상자를 안고 포연속을 가는 감을 주었다. 첫날 색시가 신에 흙을 묻히지 않는다고 해서 옛날엔 까래를 깔고 걸어갔는데 지금은 대낮부터 남편의 품에 안기는《행복》으로 바뀌였다. 민속결혼식에서도 신랑 리인혁(李仁赫)씨가 신부 강수옥(姜秀玉)양을 안고 주단이 깔린 층계를 톺아 례식장에 들어설 때 폭죽소리가 없어서 다행이였으나 대신《결혼축하곡》이 례식장을 꽉 채워서 민속적인것과는 멀리 떨어진 교회의 결혼식에 참가한듯한 착각을 주었다.

신랑신부의 신접살림을 차릴《빌어든 집》은 부엌칸과 온돌칸 두칸짜리 한족식 집이였다. 맨 웃방 봉당에 신랑집에서 준비한 옷장과 이불장이 놓였는데 신부가 갖고온 첫날이불이며 옷가지들이 채워져있었다.

빨간 고추를 문 삶은 통닭이며 과일과 떡이며 생선과 소, 돼지갈비들을 다리가 부러지게 챙긴 신부상은 흰 천 복판에 빨간 희자, 그 우로 우측 룡(龙), 좌측 봉황으로 수놓고 희자밑으로 원앙새 한쌍이 모란꽃(牡丹花)에 받들려 수놓아진 천이 병풍 대신 벽에 걸려있었다. 그리고 온돌우에 놓인 상우에는 부리에 빨간 고추를 물린 삶은 통닭이 외롭게 홀로 소랭이에 담긴 팥속에 다리를 묻고 서있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과일과 떡이며 생선과 소, 닭갈비들이 챙겨져있었다. 전안상(奠雁厢)은 배제되고 없었다. 그러므로 전안례도 삭제되였다. 민속결혼식에서는 신랑이 붉은 천에 싼 기러기를 전안상에 놓고 북쪽을 향해 큰절을 두번 올리고 나서 기러기를 정중히 장모님께 두손으로 받쳐 올리자 장모가 받아서 역시 치마폭에 곱게 싸안았었다. 비록 이곳 결혼식에서는 전안례가 사라져있었지만 압록강류역에서 류전되고있는 전안례에 관한 전설은 아주 감동적이라 하겠다.

김두태(金斗太) 구술, 장평(張平) 정리로 된《전안례의 유래》는 력사시대와 관명(官名)이 엉망이긴 하지만 압록강류역에서 변형된《아리랑》과《춘향전》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길림성민간문학집성 - 장백조선족자치현편》337페지에 실린《전안례의 유래》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 조선족전통혼례식의《전안례》는 고구려시대로부터 전해왔다. 옛날 조선족들은 신랑이 신부를 맞아올 때 한마리 흰 색갈의 산 기러기를 품에 안고 가서 전안례를 하고 날려보냈다. 그후에는 나무로 조각한 기러기로 변했다.

전설은 계속 말한다.

옛날 패수(浿水 - 압로강)벌에 길랑(吉郞)이라는 총각과 미월(美月)이라는 처녀가《금석지맹, 영세불변(金石之盟, 永世不变)》의 사랑을 맺었다. 그들은 우연히 산에서 다리가 부러진 기러기를 구해서 키웠다. 총각이 서울로 과거시험을 치러 떠나는 날 처녀는 아리랑산까지 배웅을 하면서《아리랑》을 불렀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산너머 갈 길은 요원한데 / 님이여 평안히 서울로 가세요 / 과거에 급제하고 돌아오세요 / 다진 사랑 잊지 말고 / 달밝은 밤 꽃밭에서 다시 만나요.》

총각이 떠나고 해가 바뀌여 찾아온 단오날 그네터에서 미월이의 미색에 반한 군수 김호(金虎)가 첩을 삼으려고 랍치를 했다. 감방에 갇힌 처녀는 눈물의 사연을 적은 쪽지를 기러기의 다리에 매서 총각이 떠나간 서울로 보냈다. 암행어사가 되여 귀로에 오른 총각은 기러기가 가져온 편지를 보고 밤낮으로 달려 군수가 미월이를 처단하기로 한 날 때맞춰 도착하여 간악한 군수를 처단한다. 그리고 결혼식을 하던 날 혼례교배상에 기러기를 얹어놓고 맞절을 하고는 기러기를 하늘 공중으로 날렸다. 기러기는 사랑, 믿음과 화목, 정절의 상징으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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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앙새는 한족들의 전통습관으로서 사랑의 상징이다.
신부가 신랑집에서 안배한 대반의 인도를 받아 벽에 친 수놓은 천을 배경으로 사뿐 앉았다. 수놓은 원앙새 한쌍이 꽃너울우로 바라보였다. 원앙새는 한족들의 전통습관으로 사랑의 상징이다. 쌍기러기를 현재 조선족 젊은이들이 흔히 원앙새로 착각하고있는것처럼 여기에서도 원앙새가 우리의 전통의 기러기의 자리를 빼앗고있었다.

총각 둘이 신부상을 맞들어 움직여놓자 대반을 앉은 신랑측 아주머니가 포도주를 따라 상우로 세번 돌려서 주니 신부도 세 모금으로 꺾어서 마시였다. 뒤미처 신랑이 주례를 서는 풍더분하게 생긴 중년아주머니가 따라 주는 술을 온돌목에 서서 찌웠다. 아마 이것이 전안례인듯 싶었다. 기러기 대신 수놓은 원앙새가 지켜보는 앞에서 영원한 사랑의 술을 마시는것이리라. 그리고 나서 신랑은 다시 주례자가 건네주는 바가지에 담긴 과자를 한잎 물어 떼고는 바가지를 구들우에 팽개쳤다. 바가지가 엎어지자 옆에서 구경군들이 아들을 본다고 좋아서들 손벽을 쳤다.

연길의 민속혼례식에서 보는 신랑신부의 교배례도 여기에서는 삭제되였다. 신랑이 큰상을 받은 신부옆에 올라가 앉더니만 교배술을 신랑, 신부가 오른손에 받아쥐고 깎지걸이로 키스를 할듯 얼굴을 맞대고 마셨다. 그리고 나서 사진사의 지시에 좇아 신랑신부는 여러 가지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었고 여러 친척친우들도 구들에 올라가 신혼부부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모든 절차가 끝나자 신랑이 퇴장하고 대반을 앉은 사람이 신부집의 어른들한테 보낼 상을 치기 시작했는데 우선 먼저 빨간 고추를 문 닭의 목을 비틀어 끊어서 흰 종이에 싸서 신부의 치마폭에 싸주었다.

결혼식의 길상물로 상에 놓인 닭은 다치지 않는 우리의 전통풍속은 사정없이 짓밟혀졌다. 신랑도 신부집에 가서 큰 상을 칠 때 닭모가지부터 비틀어 종이에 싸서 호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온다. 닭목을 빼는것은 연변에서도 풍속처럼 돼버렸다. 닭이 우는 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일해서 앞으로 잘 살라는 뜻이란다.

나하고 동행이 된 김명국선생은 한국에서는 구경조차 할수 없는 기이한 결혼식이라면서 생소한 장면들을 열심히 렌즈속에 담았다. 중국에 사는 나의 눈에도 서먹서먹한 장면들이니 그럴만도 했던것이다.

서양식에 한족식에 서울식, 함경도식으로 복합된 결혼문화는 그런대로 받아들일수 있는 실정이 나의 마음가짐이였다. 나역시 거기에 못지 않은 결혼식을 가졌던 사람이 아니였던가! <계속>

정리: 최예지 중국 전문 기자 rz@ifeng.co.kr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판된 작품의 원본을 수정없이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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