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행문] 혈연의 강들上 제2부 압록강 2천리 - 제1장 국경의 강(2)

글 : 류연산

기사입력 2018-05-31 09:56:29 | 최종수정 2018-05-31 10:2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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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변계조사조 일원이였던 김학현(金学铉 60세 원 장백현문화관 관장)선생은 말한다.

《당시 장백현경내에서 백두산으로 오르는 길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우리 조사조일행은 조선 혜산(량강도 소재지 혜산시)으로 해서 백두산으로 올라갔지요. 백두산 숲속에 풍막을 치고 옹근 석달을 살았습니다. 조선 조사대 풍막은 우리와 한마장 떨어져있었습니다. 우리는 낮이면 몇사람을 떼내여 강에서 산천어를 잡게 했지요. 산천어탕에 저녁이면 술들을 마셨습니다. 조선 동무들이 늘 우리한테 와서 술을 가져 갔습니다. 조선 술은 도수가 낮아서 맛이 없었답니다. 그때 음식은 서로 나누어 먹었지요. 우리는 백두산 대정봉과 압록강 발원지까지 륙계를 세웠답니다.》

《제1대대 제2조는 1호 계장점에서, 다시 말하면 조선의 연지천(胭脂川)과 압록강이 합류하는 곳에서 시작하여 혼강하(浑江河)구에 이르는 수계(水界)와 압록강속에 있는 섬과 사주에 대한 조사를 책임졌습니다. 1963년 5월 7일부터 그해 9월 6일까지 조사사업을 했댔지요. 우리 현내 257km 수계에 있는 섬과 사주는 163개였는데 그중 중국에 귀속된것은 겨우 71개였습니다.》

압록강의 섬과 사주는 대부분 조선에 귀속되여있다. 압록강속에 있는 섬은 모두 205개이고 그중 중국 섬은 78개, 총 면적은 4,978,393평방메터이고 총 경작지 면적은 898,716평방메터이다. 조선의 섬은 127개, 총 면적은 100,736,950평방메터이고 총 경작지 면적은 80,526,175평방메터이다. 중국 섬중 제일 큰 장도섬(长岛 료녕성 관전현 경내)은 593,750평방메터이고 제일 작은 팔호갑하도(八号闸下岛 길림성 장백현 록강촌 경내)는 70평방메터이며 조선에서 가장 큰 비단섬(绸缎岛 조선 함경남도 신의주 경내)은 26,500,000평방메터이고 가장 작은 창암도(苍岩岛 함경남도 신의주 경내)는 70평방메터이다. 중국 섬에는 거주자가 없지만 조선에는 7개의 섬에 사람들이 산다.

강속의 이런 섬들은 늘 타국인들을《끌어들이》는 장본인으로 되기도 한다. 자기 나라 땅이거니 하고 무심히 디뎠다가 초풍을 하는 수가 종종 있다. 어느 한 중국 사람은 섬에 올랐다가 옥수수를 따는 조선 사람들이 어서 돌아가라고 일러주어서야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했다.

세월의 흐름속에 강곬이 변하면서 수계가 륙계로 변화되기도 한다. 료녕성 관전현 고루자향(辽宁省 宽甸县 古楼子乡) 앞 강역숲에는 1990년에 50m 간격으로 국경비가 세워졌다. 원래는 강이였는데 물곬이 조선쪽으로 전이하면서 국계가 변화되여 다시 세웠다는것이다.

저멀리 협착한 골짜기를 빠져나와 여기 발밑을 유유히 흐르는 압록강량안에 사이좋게 앉은 장백조선족자치현 소재지 장백진과 강건너 조선 량강도 소재지 혜산시 집집의 굴뚝에서 모락모락 솟는 조반 짓는 연기를 굽어보면서 나는 이 두나라 계하(界河)가 친선의 강이라는 생각에 앞서 국경이라는 엄연한 시점에서 달리던 사색이 발목을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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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산우에 선 령광탑
압록강은 꽃사슴이 뛰여가고 오리 깃털같이 맑은 물줄기가 조잘대며 묻어가는 전설의 강도, 천진란만한 처녀의 강도 아니다. 인간을 자기가 소속된 국토안에 압축시키는 울타리이다.

탑산우에 세워진 령광탑(灵光塔)을 등지고 과마석(跨马石)을 딛고 서서 평화의 새 날을 맞은 산간 도시를 굽어보노라니 그제날 군마의 호용소리와 병장기의 부딪침과 병졸들의 처참한 아비규환이 심장을 허빈다.

과마석은 말발굽자리같이 푹푹 패인 커다란 화산돌을 가리킨다. 일명 점장대(点将台)라고도 하는데 당나라 대장군 설인귀(薛仁贵)가 말에 올라 군기를 흔들며 군사를 호령하던 곳이라는 전설이 비석돌에 새겨져있다. 설장군이 한번 채찍질하면 군마는 삼천리를 단번에 달렸다고 한다. 고구려를 쳐서 무찌르고 여기 바위우에서 승리자의 호기를 뽐냈음을 알려주는 이야기일것이다. 그리고 당조의 인물로 백두산에 오른 사람이 바로 설인귀라고 했으니 아마 고구려를 정벌하는 길에 들러간 곳인지도 모를 일이라 하겠다.

력사의 흥망성쇄를 두고《삼국연의》머리시에서는《한마당 꿈》이라고 했다. 정녕 그러했던가?!

고구려의 뒤에 이 땅에 일어선 발해의 강성과 더불어 여기 탑산우에는 거대한 령광탑이 우뚝 솟았다. 5층으로 된 방형(方形)의 탑신 높이는 12.64m, 탑찰(塔刹)은 다섯개의 쇠솥을 조롱박형국으로 탑정(塔顶)우에 마주 얹어 세웠는데 그 높이가 1. 98m이다. 기좌(基座)가 없이 직접 지면으로부터 청회색 꽃무늬 벽돌로 쌓은 탑신 층마다 남향으로 호형의 권문(券门)이 나있다. 탑신아래에는 길이 3.2m, 너비 3.4m, 깊이 1.49m 되는 지궁(地宫)이 있다. 지궁 뒤벽 중앙에는 석판 대좌(台座)가 있는데 사리함을 놓았던 자리로 추정한다. 일찍 지궁속에서 파손된 석불이며 담령(担铃) 등 많은 문물이 발굴되였다고 한다.

1982년부터 2년에 거쳐 동북 고고대(考古队)의 소춘화(少春华)와 중국과학원 자연과학사 장어환(张驭环)교수가 고찰과 검증한 결과 발해시기 불탑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어느때 누가 세웠고 불탑 이름이 무엇인지 문헌기재가 없다고 한다. 1908년 청나라 장백부(长白府) 제1임 지부 장풍대(张凤台)가 이 탑을 보고 서한(西汉)의 로(鲁)나라 령광전(灵光殿)과 흡사하므로 령광탑이라고 했고 이 산을 탑산, 산아래 강역 벌을 탑전(塔甸)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령광탑은 원래 일곱층으로 되여있고 밤이면 빛을 뿌려 압록강량안을 환히 비추었다고 전설은 말한다. 어느 해엔가 낯모를 사람 둘이 와서 탑을 수리한다는 명의로 밤낮 일주일간 탑속에서 보내면서 세개의 금불상을 훔쳐 가지고 도망을 했다. 그런데 압록강으로 배를 타고 가다가 바람을 만나 배가 번져지며 사람은 죽고 금불상은 강심에 갈아앉았다. 금불을 잃은 탑은 그때로부터 령험을 잃고 광채를 뿜지 못했다는것이다. 그러자 독사가 탑속에 숨어있으면서 사람과 성축을 마구 잡아먹었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살길을 찾아 타곳으로 떠나갔다. 이 일을 안 룡담(龙潭 - 백두산 천지)의 신룡(神龙)이 대노하여 구름을 타고 우뢰를 몰고 왔다. 독사는 무서워 탑의 제일 높은 층에 올라가 숨었다. 신룡은 거대한 손으로 불탑 웃부분 두개의 층을 떼여 들고 돌아가 못가에 처박았다. 그래서 탑신이 5층으로 되였다고 한다. 지금도 룡담가에 탑모양의 바위돌이 있는데 신룡이 옮겨간 령광탑 웃부분이라 하고 그밑에 지금도 사악한 독사가 짓눌려있다고 한다.

발해가 망하고 숨가쁜 료(辽), 금(金)을 지나 청(淸)이 시작되면서 봉금(封禁)령이 떨어졌다. 만족은 동북을 룡흥지지(龙兴之地)로 보고 저들 선조들의 발상중지(发祥重地)를 보호하려고 료녕성 경내에《변색(边穑)》을 쌓고 이른바 류조변(柳条边)이라 속칭하면서 이민족의 천입을 엄금했다. 1677년(康熙16년) 청정부는 백두산과 압록강, 두만강 이북의 천여리의 넓은 지역에 봉금구를 만들었다. 장백현경내는 경위장(京围场)으로서 만족들의 사냥터였다.

짐승들만 욱실거리던 이곳에 밥짓는 연기가 피여오른것은 19세기 초엽부터였다.《장백현황(长白县况)》에는 이런 기재가 있다.

- 청 도광(淸道光) 11년(1831), 모아산(오늘의 길림성 림강부근)의 북탕하지방에서 조선인 거주자 두호를 발견했고 도광 25년 십몇명 조선인이 림강(临江)에 넘어왔다.
- 함풍(咸丰) 2년(1852년) 조선 함경도 단천군 십여인이 로령(老岭)아래에 도망하여 와서 밭을 일구고 농사를 지었다. 이 거민(居民)들이 바로 변강 장백경내에 천입해온 선구자들이다.
자연재해, 페스트 그리고 범보다 무서운 세금과 부역과 징병에 살길이 막힌 조선의 백성들은 죽음의《월강죄》를 무릎쓰고 두만강, 압록강을 넘었으니 당시 그들의 이주 정경을 눈물 없이는 들을수가 없다.

조선 자강도 만포와 강계사이에 있는 석막골에 살았던 허병길일가의 이주의 발걸음을 더듬어보자.

기사년 재황을 맞은 그들 일곱식구(어머니, 병길 부처, 아들딸 넷)는 종내 고향을 등졌다.
병길이는 담요며 약간의 의복, 그리고 길에서 먹을 얼마 안되는 식량을 쪽지게에 짊어졌다. 병길의 처는 돌이 갓 지난 청돌이를 업고 놋그릇, 수저, 남비 등을 담은 함지박을 머리에 이었다.
열네살 딸 곱단이는 잡동사니를 싼 보자기를 이었고 할머니는 괴나리보짐을 지고 여섯살 쌍가마의 손목을 잡고 걸었고 아홉살난 청하는 썰매를 끌고 할머니 뒤를 바지런히 따랐다.

겨울날씨는 몹시 추웠다. 헐벗고 굶주린데다 늙은이와 어린것들을 데린 그들의 걸음은 여드레 팔십리였다. 만포리에서 좀 더 가니 떵떵 얼어붙은 압록강이 나타났다. 팔기군으로 편성된 청조의 순방군들이 변방을 지켰다. 하지만 무리로 강을 건너는 이재민들을 막을수 없었다. <계속>

정리: 최예지 중국 전문 기자 rz@ifeng.co.kr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판된 작품의 원본을 수정없이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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