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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행문] 혈연의 강들上 제2부 압록강 2천리 - 제1장 국경의 강(1)

글 : 류연산

기사입력 2018-05-29 09:39:09 | 최종수정 2018-05-30 09:4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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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시

그 강을 건너, 그 산을 넘어
먼먼 하늘길 울음울음 깔면서
하얀 숨결이 줄을 서간다
하얀 설음이 줄을 서간다

- 조룡남《두루미행렬》

1996년 6월 4일 아침 8시반, 연길을 떠난 장백행 뻐스는 동해에서 솟는 태양과 동행하여 백두산쪽으로 힘겹게 털털거리며 달려갔다.

한낮이 훨씬 기운 오후 2시경에 안도현 이도백하에 이르러 점심 식사를 대충들 하고 재출발을 한 뻐스는 무송현의 울창한 장백수림속을 달렸다. 록음에 받들려 하늘우에 우뚝 솟은 백두산이 선경같이 시야에 안겨왔다.

뻐스는 백두봉을 에돌아 서쪽으로 달렸다. 홍송, 백송, 봇나무, 사시나무 - 갖가지 나무들이 우거지고 록음속에서 만화방초가 방긋 웃는 백두의 숲길은 말그대로 거창한 화랑이였다.

낮이 한껏 긴 삼복의 시작이라 석양이 붉게 타고 해가 숲속에 질 때는 오후 7시가 당금이였지만 숲은 그냥 계속되였다.

승객은 나까지 10여명이 되나마나했다.
거개가 조선으로 가는 연변장사군들이라 사람보다 짐들이 엄청났다.

뻐스우의 짐받이에 산처럼 무겁게 싣고도 모자라서 뻐스안의 좌석은 물론 립석에까지 보따리천지였다. 묻지 않고 보지 않아도 보따리에 싼 내용물은 싸구려 옷가지며 담배, 술, 그리고 입쌀따위 일용품임을 알수 있었다. 래일 이 뻐스가 연길로 되돌아갈 때면 조선에서 돌아오는 연변장사군들의 해산물보따리가 뻐스의 무게를 가중시킨다는것이였다.

저녁 9시경에 뻐스는 장백현성에 도착했다. 낯선 고장이고 밤이라 나는 승객들을 따라서 교통려사의 독칸에 주숙을 정했다. 한족식 온들방이였는데 려관비는 고작 15원, 따뜻한 온돌방에 누워 려로의 피로를 풀면서 나는 압록강답사의 첫날밤을 지냈다.

6월 5일. 나는 압록강답사의 첫 해돋이를 탑산(塔山 해발 820m)우에서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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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백현 압록강상류
두만강의 태양이 동해에서 솟아 백두산에서 진다면 압록강의 태양은 백두산에서 솟는다고 하리. 이글이글 타는 진붉은 태양은 저 멀리 끝없이 뻗어간 개마고원과 웅기중기 치솟은 푸른 산발을 밝게 비추었다. 발밑으로 유유히 흐르는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해가 솟는 백두산천지에 이른다.

그래서 연암 박지원은 저 유명한《열하일기》에서《이른바 백산은 백산을 가리킨것으로 산해경에는 불함산이라 불렀고 우리 나라에서는 백두산이라고 부르고있다. 백두산은 여러 강물의 발원지로서 그 서남쪽으로 흐르는 물이 압록강이다》라고 썼던것이다.

옛날 옛적 수목화초속에 백수만이 기거하던 당시엔 이 강이 없었다고 한다. 전설은 압록강의 기원을 이렇게 전하고있다.

어느 해엔가 왕가물이 들어 강은 바닥이 나고 땅은 거북등처럼 갈라터졌다. 싱싱하던 수목은 삭정이가 되고 생령은 생사선에서 허덕였다. 백수대왕 호랑이의 명을 받고 처녀 꽃사슴은 백두산으로 수원을 찾아 떠났다. 사흘 낮 사흘 밤 내처 달려 산정에 오르니 열여섯 기이한 봉우리들이 웅기중기 둘러선 속에 담겨진 천지-못물이 시원히 시야에 안겨왔다. 교교한 달빛이 쏟아져내려 은빛으로 반사하는 명경(明镜)같은 못속에서 아름다운 선녀들이 미역을 감고있었다. 선녀들은 꽃사슴 처녀의 애달픈 하소를 듣고 눈물을 지었다. 선녀들은 옥황상제 몰래 천지 밑바닥으로 굴을 뚫고 물을 에워갔다.

백두산의 제일봉인 대정봉에 올라서서 못을 굽어보면 천지물은 마냥 고요하다. 하지만 선녀들이 굴을 뚫고 물길을 에워 압록강을 만들었다는 그 곳 못속에서는 사나운 소용돌이가 감아친다고 한다. 일제시기 일본인 다섯이 못 깊이를 측량하려고 떼목을 무어 못속에 들어갔다가 소용돌이에 감겨들어 떼목과 함께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장백현 로인들속에서 전해지고있다.

전설처럼 처녀 사슴이 이끌어온 강이라고 해서 처녀의 강, 천애협곡을 지나 흐른다고 해서 애강(崖江)으로 불렸고 한대(汉代)의 사책에는 마자수(马紫水), 고구려는 우발대수(优勃大水), 당조 때에는 압록강, 1712년 백두산 천지 동쪽 10km 상거에 세웠다는 정계비에는 압록수로 기재되였다.

왜서 압록강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였는가?

《당서(唐书)》에는《고려의 마자수는 그 근원이 말갈의 백산으로부터 출발했으니 그 물빛이 오리대가리빛처럼 푸르다 하여 압록강이라고 부른다》라고 적혀있다.

압록강의 이름의 래원에 대해 여직 이의를 나타낸 사람은 오직 구자일(具滋一)선생뿐인이니《압록수란〈신당서〉의 설명처럼 기러기(오리의 오역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그대신 우리 말의 아리수, 아리랑, 오루하, 알천 등의 말을 옮긴것으로 동이족이 사는 곳에서 주요한 지역이면 붙일수 있는 이름인것이다.》(《고구려발해지리지》47페지)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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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산우에서 본 중국의 장백진과 조선의 혜산시 전경
《삼국사기》의 지리지(2. 4)에도 아리수(阿利水)의《아리》가《압록(鸭绿)》이라고 씌여있다.《아리》를《압록(鸭绿)》으로 표기하였다는것은《압록》에서의 받침소리들인《ㅂ》와《ㄱ》가 당시의 우리말에서는 쓰이지 않았다는것을 말해준다고《조선전사》(제3권 305페지)에서도 적었다.

백두산 주봉 서쪽켠에서 발원하는 난강(暖江)과 포도하(葡萄河)가 합류하는 대양차구(大阳差口) 아래로부터 압록강은 황해로 향한 원정을 시작한다. 지도에서 보면 동경 128도 05분, 북위 41도 57분의 교차점이고 해발은 1770m이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강량안의 61,889㎢의 넓은 강토에 생기를 주며 천애협곡을 에돌아 황해에 이르기까지 790km의 먼길을 줄이는 압록강을《황여고(黃与考)》에서는《천하에 강 셋이 있는데 황하, 장강, 압록강이라》고 썼다.

바로 대양차구에 인류 력사상 처음으로 국경비가 세워진것은 1963년이였다. 그에 앞서 1962년 10월 12일 주은래총리는 평양을 방문하고 김일성주석을 만나《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변계조약》을 체결했다.

조약의 규정을 간략하면 아래와 같다.

- 천지 이남의 변계선은 2469고지를 경과하여 2071고지 이동의 압록강 상류와 이 고지와 제일 가까운 작은 지류에 이르는 한점, 즉 이 지류의 수류중심선(水流中心线)에서부터 압록강으로 흘러드는 곳까지이다.
- 상술한 2071고지 이동의 압록강 상류와 이 고지에서 제일 가까운 작은 지류가 압록강에 흘러드는 곳으로부터 압록강구에 이르기까지는 압록강을 계선으로 한다.
- 압록강과 두만강 변계의 너비는 언제든지 수면의 너비를 준한다.
- 두 나라의 계하(界河)는 두 나라의 공유로서 공동히 관리하고 사용하는바 항행, 어렵(鱼猎)과 강물사용 등을 포함한다.

《조약》이 체결된후 두 나라에서는 중조변계련합위원회를 성립하고 1963년 5월부터 변계실지조사를 시작하였다. 국경비를 세우고 강중의 섬과 사주(沙洲)의 귀속을 확정했다.

백두산 서, 남부의 륙계(陆界)의 계선 확정은 제1대대의 제3조가 맡아 했다고《장백현지(长白县志)》는 기록하고있다. 180여명의 로동자를 동원한 이 제3조는 8개 작업조로 나뉘여 5월 10일부터 8월 13일까지 백두산 천지 서, 남부 륙계를 확정하고 철근을 넣고 콩크리트로 다진 계장(界桩) 5개호(号)에 계비(界碑) 여덟개를 세웠는데 1호 계장은 두개, 2호 계장은 두개, 그 다음 3, 4, 5호는 각각 하나였다.

계장의 높이는 155cm와 129cm(지면 로출부분)의 두가지이고 철근을 박고 콩크리트로 다졌고 또 계장의 중심에는 쇠말뚝을 박았다.

계장의 사면에는 글을 새겼는데 중국측 계장 복판에는《中国》이라는 한자와 그 아래에 계장을 세운 년도를 밝혔다. 조선측도 역시 그러했는데 글자가 조선문으로 되여있을뿐이다. 계장의 량측엔 번호를 새겼다. 같은 번호의 계장은 쌍립(双立) 혹은 삼립(三立)으로 되였고 통일 번호아래에 보조편호(辅助编号)를 괄호안에 적었다.

계장의 보호와 수리는 기수호는 중국측에서, 우수호는 조선측에서 책임지며 같은 호의 쌍립이거나 삼립은 어느 측 경내에 세워졌으면 그 나라에서 책임지기로 협의되였다. <계속>

정리: 최예지 중국 전문 기자 rz@ifeng.co.kr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판된 작품의 원본을 수정없이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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